위만, 준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 :: 역사의 하루

 

 

위만, 준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

 

위만(衛滿, ? ~ ?, 재위: 기원전 194년경 ~ ?)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燕)나라 사람으로 고조선에 망명하여 준왕(準王)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사람이다.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195년경에 전한(前漢)의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모반하여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위만은 준왕에게 서쪽의 번병(藩屛)이 되기를 청하였고 준왕은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아 100리의 땅을 주고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변방을 지키면서 연(燕)의 망명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웠으며 기원전 194년 무렵에 수도인 왕검성을 공격하여 준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위만은 형식적으로 한나라의 외신(外臣)이 되어 그 대가로 병력과 재물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여 복속시켜 수천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적 문제

 

현전하는 모든 사료에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사학의 일환으로 중국인 위만이 고조선을 식민통치한 것이라 평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신채호는 위만이 찬탈한 지역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평하기도 했다. 이병도는 위만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옷을 입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위만이 조선 유민 출신이라 추측하였다. 고조선이 진개의 침입으로 요동 일대를 상실했을 때 그 지역에 남아 연나라 국적으로 살았던 조선인이라고 본 것이다. 위만의 국적 문제는 위만조선 정권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일제시대 학자들은 위만이 중국인이므로 위만조선은 중국의 식민 정권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만조선이 국호나 정치체제·수도 등을 옮기지 않은 채 기존 고조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므로, 지배층이 중국인이라고 해도 국가의 정체성은 고조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계 지배층과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의 연합 정권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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