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의 변, 소가노 이루카를 참살하다. :: 역사의 하루

 

 

을사의 변, 소가노 이루카를 참살하다.

 

소가 씨는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 - 우마코(馬子) - 에미시(蝦夷) - 이루카의 4대에 걸쳐 정권을 장악하였다.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 훗날의 후지와라노 가마타리)는 이러한 소가 씨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같은 중앙집권제와 같은 군주, 즉 오키미케(大王家, 일본 황실)로 권력을 되돌리고자 가루노 미코(軽皇子, 훗날의 고토쿠 오키미)에게 접촉했으나, 그의 기량이 부족함을 알고 그만두고 나카노오에노 미코에게 접근하였다. 함께 견수사 출신의 미나부치노 쇼안(南淵請安)에게 학문을 익히고 소가 씨 타도의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다. 나카노오에노 미코는 같은 소가 씨족임에도 에미시・이루카 부자에게 비판적이었던 소가노 구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石川麻呂, 소가노 이시카와마로)의 딸과 결혼하고 사에키노 고마로(佐伯子麻呂), 가쓰시로노 와카이누카이노 쓰나다(葛城稚犬養網田) 등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고교쿠 오키미 4년(645년) 6월 12일, 아스카의 이타부키 궁(板蓋宮)에서 나카노오에와 가마타리 등이 소가노 이루카를 참살하는 쿠데타를 결행하고, 다음날 소가노 에미시까지 자신의 저택에 불을 질러 자결함으로써 소가 씨족 중심의 정치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것을 사건이 일어난 해의 간지를 따라 「을사의 변」이라고 부른다.

 

신정권 발족

 

을사의 변 직후인 6월 14일에 고교쿠 오키미가 퇴위하고, 나카노오에노 미코는 자신이 오키미가 되는 것을 사양하는 대신 가마타리와 상담하여 왕제(王弟) 가루노 미코를 즉위시키고(고토쿠 오키미) 자신은 황태자가 되었다. 이것은 스이코 오키미쇼토쿠 태자가 황태자로서 정치 실권을 쥐었던 것을 답습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로 좌우 오오미(大臣) 두 사람과 우치노오미(内臣)를 임명하고, 당나라의 율령제도를 실제로 운영하기 위한 「브레인」으로서 구니노 하카샤(國博士)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정치 교체는 쇼토쿠 태자의 정책을 계승한 정치 변혁이기는 하나 당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소가 씨를 대신해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의 정세 흐름에 반응하여 중앙집권적 · 관료제적인 정치기구로써 권력 집중과 국가 권력을 최고도로 집중시키고 발휘시키기 위한 국정 개혁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 대왕 고토쿠 오키미, 황태자 나카노오에노 미코

◎ 좌대신 아베노 우치마로노 오미(阿部内麻呂臣), 우대신 소가노 구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 우치노오미 나카토미노 가마타리

◎ 구니노하카샤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 구니노하카샤 민(旻)

 

6월 19일, 고토쿠 오키미와 나카노오에가 군신을 큰 나무 아래 모아서 「제도(帝道)는 하나 뿐이다」, 「폭역(暴逆, 소가 씨)을 벌하였으니 이후 군주는 두 정치를 행하지 않고 신하는 두 조정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신에게 맹세하는 의식을 행하고, 「다이카 원년」이라는 최초의 연호도 정했다. 연호를 다이카(大化)라 정한 후 씨성제도(氏姓制度)를 부정하는 새로운 국가체제를 건설하는 정치개혁에 착수하였다.

8월 5일에는 도고쿠(東國)에 고쿠시(國司)를 파견하고, 신정권이 목표로 하던 정치개혁에 착수했다(다만 이들 고쿠시는 임시 관직으로서 훗날의 고쿠시와는 같지 않다). 이들 고쿠시는 여덟 개 조(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어느 지역에 파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며, 제3조는 게누(毛野) 방면, 제5조는 도카이(東海) 방면으로 보내졌음을 훗날의 복명(復命) 및 논공행상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신정권은 이같은 넓이를 단위구역으로서 여덟 개 조의 고쿠시를 도고쿠로 파견했다. 가네히쓰(鐘櫃)의 제도도 정하고, 남녀의 법과 양민・노비의 자손의 귀속도 결정되었다.

한편 소가 씨와 혈연이 있어 소가노 이루카에 의해 차기 오키미로서 주목받았으나 을사의 변 이후 출가하여 요시노로 달아났던 후루히토노오에노 미코(古人大兄皇子)가 9월에 모반죄로 처형되고, 12월에는 수도를 아스카에서 셋쓰의 나니와(難波, 현재의 오사카 시 주오 구) 나가라노 도요사키 궁(長柄豊碕宮)으로 옮겨 정치의 중심을 호족에서 천황으로 바꾼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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