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하루 :: 역사의 하루

 

 

키예프 공국, 우크라이나의 시초

 

키예프 대공국 또는 키예프 루스880년경부터 12세기 중반까지 현 우크라이나키예프를 중심으로 존재한 고대 국가로 동슬라브족들이 구성원들의 주를 이루었다. 우크라이나의 시초이기도 하다. 창시자는 바랑기아인 출신 올레크 베시 공(公)으로 드니프르 강 유역을 정복하여 루스의 수도를 노브고로드에서 새 정복지의 키예프로 옮겼다.

 

역사

스뱌토슬라프 1세 (재위 962~972년)은 동쪽과 남쪽으로 정복 활동을 펼쳐 키예프 대공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고, 당시 주요 교역국이었던 비잔틴 제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 결과 블라디미르 1세 때에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기독교를 전래받아,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삼았으며, 서유럽 국가들과도 많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블라디미르의 손녀들은 프랑스 왕, 헝가리 왕, 노르웨이 왕과 혼인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인 야로슬라프 1세(재위 1019년1054년)까지 키예프 공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채 키예프 대공국은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고, 흑해의 유목민이었던 폴로프치 족이 스뱌토슬라프 1세와 블라디미르 1세가 구축해놓은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1095년에는 키예프를 점령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재위 1113년1125년)가 즉위해 잠시나마 중흥기에 접어들었으나 12세기 중반에 이르면 수많은 공국으로 나누어져 이름만 남은 상태가 되면서 인구는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1240년 키예프의 쇠퇴기를 노린 몽골에게 키예프가 함락되면서 쉽게 붕괴하였다.

+ Recent posts